오른쪽부터 Russ Kelly 당시 가해학생, Mark Yantzi 당시 보호관찰관, 박윤서 소장
1974년 온타리오 주의 조용한 마을 엘마리아에서 십 대 두명이 음주 후 길에 주차되어 있던 차량과 주택의 기물 등을 부수는 난동을 부리는 사건을 일으킵니다. 일반적으로 이런 범죄의 경우 소년원 송치 같은 형사처벌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보호관찰관인 마크 얀츠(Mark Yantzi)와 데이브 워스(Dave Worth)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청소년들이 단지 재판을 받고 처벌을 받는 것으로 책임지는 것보다 피해자들과 만나서 직접 사과하고 변상을 할 수 있도록 하면 더 교육적이고 치유적일 수 있다고 생각했고, 이를 판사에게 제안하게 됩니다. 놀랍게도 골든 맥코넬(Gordon McConnell) 판사는 이 제안을 받아들였고, 피해를 입은 주민들과와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들이 직접 만나 대화로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해가는 첫 사례가 됩니다. 결과적으로 이 사건은 세계 최초로 피해자-가해자 대화모임이 생겨나는 계기가 되었고 이후로 피해자, 가해자, 지역사회에 모두에게 큰 영향을 끼치는 운동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엘마이라 사건을 계기로 피해자와 가해자, 지역사회 구성원들이 직접 정의를 만드는 과정에 참여하는 절차들이 발전하게 되었고, 이후 회복적 정의(Restorative Justice)가 하나의 정의 패러다임으로 자리잡으면서 성공적인 첫 실천 사례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후 온타리오 지역에서 범죄와 갈등에 회복적 정의를 적용하기 위해 마크 얀츠씨가 주도한 공동체 정의 이니셔티브 (Community Justice Initiatives, CJI)라는 전문단체가 설립되었습니다.
1974년 CJI 설립 이후로 회복적 정의 운동은 캐나다를 넘어 미국과 다른 나라로 퍼져나갔고 회복적 정의 운동을 펼치는 전문단체들도 곳곳에 생겨나게 됩니다. 결국 회복적 정의 철학은 많은 선구적인 프로그램과 실천에 영감을 주었고, KOPI 회복적정의교육센터도 그 영향 아래 있습니다.
엘마이라라는 캐나다의 작은 마을에서 시작된 회복적 정의 운동은 청소년 범죄를 넘어 범죄와 갈등이 좀 더 교육적이고 치유적으로 접근될 수 있다는 새로운 정의 패러다임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초창기 회복적 정의 운동을 주도한 사람들은 전통적 평화교회인 메노나이트 교회(Mennonite Church)의 일원으로써 사법적 처벌이 갖는 한계를 지적하고 좀 더 화해와 평화의 관점에서 잘못을 바로잡는 정의의 문제도 다뤄지기를 기대한 것입니다.
그 결과 캐나다와 미국 등 북미를 넘어 뉴질랜드, 호주, 유럽 등 많은 나라들로 회복적 정의 패러다임과 실천이 확산되게 됩니다. 특히 뉴질랜드는 1989년 청소년에 대한 사법처리에 있어서 회복적 정의에 근간한 접근인 Family Group Conference(FGC)를 법제화한 최초의 나라가 되었고, 많은 의미 있는 실험의 결과들을 보여주었습니다.
UN에서도 2000년 이후로 회원 국가들에게 회복적 정의 접근을 권장하고 있으면 [회복적 정의 프로그램 운영 핸드북 Handbook on Restorative Justice Programs]를 발간하여 회원국가들에게 회복적 정의 접근을 권유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과거사 청산을 위한 정치적 접근으로 회복적 정의 패러다임을 적용한 [진실과 화해 위원회 Truth & Reconciliation Commission]가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비롯하여 40여개 국가에서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진행되어 오고 있습니다.
범죄나 잘못은 공동체의 규범(범)을 깨트린 행위로 그에 상응하는 대가(처벌)를 통해 해결한다는 전통적 정의관을 응보적 정의라고 부릅니다. 응보적 정의는 인류가 오랫동안 상식으로 받아들여 온 문제 해결 방식이자 정의구현 방식입니다. 하지만 정의를 이루는 과정에서 잘못한 사람을 처벌하는 것에 주된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정의구현 과정의 주체인 피해자의 필요가 채워지지 못하는 피해자 소외현상이 생깁니다. 또한 잘못한 사람은 본인이 야기한 피해와 영향보다는 사건의 결과로 받게 될 처벌을 줄이는데 몰두하기 쉽고 그로 인해 본인의 문제행동을 축소하려는 책임회피 현상이 쉽게 나타납니다. 결국 불필요한 당사자들 간의 대립구도가 형성되기 때문에 당사자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정의필요가 채워지지 못하는 결과를 낳기 쉽습니다.
이에 반해 회복적 정의는 잘못은 피해를 발생시킴으로 공동체의 온전한 관계를 깨뜨린 것으로 봅니다. 잘못한 사람은 본인이 발생시킨 피해에 직면하고 그 피해를 회복하기 위한 자발적 책임을 지는 것이 정의를 만드는 중요한 과정이라는 관점입니다. 따라서 회복적 정의는 피해회복을 위한 자발적책임을 높이기 위해 당사자와 공동체의 참여를 보장함으로써 이루는 정의를 의미합니다.
구분 | 응보적 정의 | 회복적 정의 |
목표 | 가해자 처벌 | 피해 회복 |
방식 | 강제적 책임 | 자발적 책임 |
주체 | 처벌권자/처벌기관 | 당사자/공동책임 |
회복적 정의는 전세계적으로 기존 사법체계에 대한 하나의 대안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사법영역을 넘어 학교와 가정, 그리고 직장과 같은 일반 조직과 지역사회 같은 일상영역으로까지 확산되고 있습니다. 학교의 생활지도 방식을 회복적 생활교육으로 바꾸고, 지역공동체나 직장, 기관, 대학 등 사회의 여러 영역에서 회복적 정의 패러다임에 기초한 분쟁해결, 갈등 전환을 도입하는 등 건강한 공동체를 세우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를 토대로 도시 전체를 안전하고 평화로운 공동체로 디자인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이 더해져 세계 곳곳에서 회복적 도시를 세우려는 실험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회복적 정의의 실천 영역
하워드 제어 Howard Zehr
회복적 정의란 무엇인가? Changing Lenses의 저자, 회복적 정의의 아버지
회복적 정의는 전 세계적으로 기존 사법체계에 대한 하나의 대안으로 발전해왔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회복적 사법 영역을 넘어 일반 조직과 학교, 가정과 같은 일상 영역으로까지 확산되고 있습니다.
학교 생활지도의 근본 틀을 변화시키는 회복적 생활교육, 학부모의 변화를 통해 가정에 적용되는 회복적 가정교육, 안전하고 평화로운 마을 만들기에 적용되는 회복적 마을, 직장이나 기관에서 갈등을 평화적인 에너지로 전환하는 회복적 조직/공동체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실천 영역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도시 전체를 안전하고 평화로운 공동체로 디자인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이 더해지며, 세계 여러 곳에서 회복적 도시를 세우려는 실험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회복적 정의 연구는 1990년대 중반, 사회복지학의 교정복지 영역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회복적 사법에 대한 세계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2000년대에 들어 본격적인 연구와 실천이 회복적 사법 분야에서 대학과 국책연구기관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비슷한 시기, 민간 영역에서도 한국아나뱁니트스센터(KOPI의 모단체)와 갈등해결센터와 같은 NGO에 의해 회복적 정의 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2000년대 중반에는 민간 영역의 회복적 정의 운동과 국책연구기관 간의 공동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본격적인 회복적 정의 실천 모델이 개발되었습니다. 몇 년간의 시범사업 결과, 서울가정법원의 소년부에 화해권고 제도가 도입되었고, 점차 확대되어 전국적으로 시행되게 됩니다. 검찰단계에서는 피해자지원법에 근거하여 형사조정 제도가 생겨났고, 법원에서도 형사화해 를 위한 조정제도가 점진적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최근에는 경찰청에서 회복적 경찰활동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으며 높은 피해측과 가해측의 만족도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2010년 이후로는 회복적 정의 운동이 학교의 생활교육 영역으로 확대되기 시작하여, 많은 학교와 교육청에서 회복적 생활교육이라는 이름으로 교육훈련과 실천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여러 지역에서 교사를 위한 회복적 생활교육 연구회가 구성되어 활동 중이며 많은 학교들이 학생들을 위한 회복적 생활교육 프로그램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회복적 생활교육의 확산 속도는 매우 빠르지만, 체계적인 실천을 위해서는 속도보다는 내실을 다지는 점진적 노력이 필요해 보입니다.
사법과 학교 영역에서의 회복적 정의 실천은 회복적 도시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아직은 초기 단계이지만, 일부 마을과 도시에서는 회복적 정의 운동을 기반으로 회복적 도시를 실현하려는 비전을 가지고 활동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청소년이 안전하고 평화로운 회복적 도시의 비전은 궁극적으로 도시의 교육행정과 사법영역에까지 확산되어, 회복적 공동체를 구현하는 큰 그림으로 발전해가고 있습니다.
KOPI 회복적정의교육센터는 한국에서 회복적 정의 운동을 민간 영역에서 시작하고 주도하는 단체로, 현재의 활발한 확산 움직임에 큰 보람과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회복적 정의 패러다임 확산과 실천을 위한 프로그램 운영과 인적 인프라 구축에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회복적 정의도 큰 틀에서는 피스빌딩이라는 개념과 실천 안의 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부터 사회에 이르기까지, 사람이 속한 어느 공동체에서든 갈등은 피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자연발생적 갈등상황 속에서, 지속 가능한 평화 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해 필요한 여러 영역의 평화 역량을 키우고 유지하는 일련의 활동, 기획, 교육 훈련, 구조화를 통합적으로 포괄하는 개념이 피스빌딩입니다.
피스빌딩은 흔히 건축물에 비유될 수 있습니다. 정밀하게 설계된 도면에 맞춰 기초를 다지고, 숙련된 기술자들에 의해 건물이 시공되며, 유지보수를 위한 관리 시스템이 이루어지는 것처럼, 피스빌딩도 예방적 평화교육에서부터 회복적 관점에서 분쟁에 개입하고, 평화적 갈등 전환을 위한 체계를 마련하며, 공동체적으로 트라우마에 접근하는 문화를 형성하는 과정을 모두 포함합니다.
일반적으로 건축물은 아래에서 위로 지어집니다. 마찬가지로 피스빌딩도 위에서 내려오는 방식이 아닌, 아래에서 위로 만들어져 가는 방향을 지향합니다. 공동체의 하부 구조를 단단하게 만드는 것이 지속 가능한 평화의 토대라는 점을 중요하게 여기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사람을 준비시키는 훈련 과정과 결과뿐만 아니라, 구조와 문화를 형성하는 과정 자체를 핵심으로 삼고 있습니다.
또한, 건축은 혼자서 할 수 없는 과정입니다. 여러 사람이 함께 역할을 나누고 협력해야 아름다운 건축물이 완성되듯이, 피스빌딩도 공동체 구성원과 외부 자원이 힘을 합쳐 자신들의 문제를 직면하고 협력적으로 해결하는 단기적, 장기적 접근을 강조합니다. 피스빌딩은 공동체의 위기를 기회로 전환할 수 있다는 유연한 관점과, 갈등에 평화적이고 건설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이 있을 때 비로소 실체가 되고, 하나의 운동으로 자리 잡을 수 있습니다.
KOP I회복적정의교육센터가 추구하는 평화 공동체의 이상 또한 피스빌딩을 교육하고 실천하며, 이를 삶으로 살아내는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훈련원의 사무실과 교육장이 있는 건물의 이름도 피스빌딩이라 명명했으며, 공동체의 이름 역시 피스빌딩 공동체(Peace Building Community)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KOPI 회복적정의교육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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